장위동인덱스: #1 감나무는 베어질 것이다

장위동인덱스: #1 감나무는 베어질 것이다

<쿨데삭빌> 프로젝트는 너무 익숙해서 쉽게 지나치게 되는 장소에서 도래할 미래를 상상하는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2018년 서울시 주택개발정비사업으로 관리처분 인가를 획득한 삼선동 5구역에서 시작되었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장소에서 걸으면서 내가 본 것들을 마치 ‘포렌식(Forensic: 법의학적)’ 증거사진들처럼 번호를 매기면서 범주화하기 시작했다. 각각의 사물들의 카테고리는 20여 가지의 번호를 부여받았다. 이러한 ‘포렌식 태도’ 와 함께 삼선동에 이어 장위동의 시각 문화는 기록되었다. 특정 항목이나 상황에 맞게 번호를 부여하면서 기록한 서로 다른 카테고리는 이미지를 좀 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보게 한다. 이러한 시스템은 눈에 보이는 특별한 흔적을 고립시키고 집중하는데 여전히 유용한 방법이다.1

‘묻힌 (분해)’, ‘막혀버린 창문’, ‘인공 재료’ ‘나무’, ‘대문’, ‘난간’, ‘지붕’ 등의 이 카테고리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이는 절망적인 이미지들의 범주이고, 파괴, 죽음, 부식의 느낌을 주는 이미지들이다. 또한 우리들의 해석의 방향을 제시하는 이러한 카테고리는 과거의 습관에서 내러티브, 미래의 가능성을 향해 열려있다. 같은 사물이라도 상황에 따라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같은 대상을 보더라도 생각하는 이미지나 상상력은 달라진다. 이 이미지는 과거의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질까? 아마도 이 이미지는 곧 과거가 될 것이고 그 반향이 어떤 방향으로 공명할지 알 수가 없다. 상상력은 과거와 현재를 분리하기도 하면서 항상 새로운 미래 어딘가로 향한다.

월곡동에서 출발하여 장위동까지 무관심하게 목적 없이 걷기도 하고, 삼선동에서처럼 탐정과 같은 눈으로 보이는 곳에서 숨겨진 것들을 조사했다. 이러한 특정 방식으로 공간을 읽고 해석하고, 발견하기 위해 공간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인식하는 걷기는 계속되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아니지만 지나가는 시간을 부여잡고자 단순히 존재하는 물질을 수집할 뿐만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매너리즘을 경험하면서 예술가로서의 내 시선의 호기심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문자 그대로 사라지는 내 주변 환경을 관찰하면서,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겨진 것들을 새롭게 지각하기 시작했다. ‘거주’의 의미와 혼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무질서에 궁금해하면서 너무나 익숙해서 보이지 않는 숨겨진 습관들을 시각화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조사하는’ 걷기는 계속되었다.2

성북구의 동북쪽에 위치한 월곡동에 인접한 장위동은 남쪽으로는 동대문, 북쪽으로는 도봉산과 인접해 있다. 산지형이 반달을 닮았다는 월곡동에는 조선 시대에는 솔밭이 많아 주막이 많았고, 소 장사들이 달밤에 도착해 흥정했기에 ‘월곡’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미아리 텍사스라 불리는 성매매업소가 여전히 ‘영업 중’ 인 월곡동에는 오래된 여관들이 골목길에 많이 남아있고, 점집도 많다. 장위동 고개에는 가끔 거품을 뿜고 쓰러져 있는 소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3 (1966년 중앙일보 기사 ‘장위로 가는 길’ 참조) 이 고개에는 도살장이 상징하는 죽음의 그림자처럼 날씨가 변덕을 부리면 버스도 황천길로 간다는 전설이 있었다고 한다.

장위동은 1950년대 이전 농촌 공간이었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서구 건축물이 소개되면서 개발되었다. 서울 동북부 지역 주택단지가 개발되면서 농촌적 삶은 해체되었다. 배나무골, 밤나무골이라 불리었던 지금의 월곡동에는 배나무나 밤나무의 흔적은 없다. 인공 구조물로 뒤덮인 땅은 숨을 쉴 수가 없고, 콘크리트 먼지가 날리는 공사장에서 울리는 소음이 아침을 깨운다. 고층 건물이 들어서자 옆에 홀로 남아 있던 이층양옥집과 밥집도 소음과 함께 사라졌다. 잠시나마 숨을 쉬던 빈 땅에는 다시 펜스가 쳐지면서 새로운 고층 건물이 들어설 안내문이 설치된다.

장위동 고개를 올라갔을 때 당시 일반인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이층양옥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2005년 사업지로 선정되어 서울 최대 “뉴타운 개발” 지역이라는 장위동은 187만 제곱미터 55만 평이 넘고, 당시 2만여 가구, 8만여 명이 살고 있었다.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시장 경제가 나빠지면서 현재 6개 구역은 개발이 해제되었다. 장위 뉴타운 사업은 나머지 15개 구역으로 나뉘어 각각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르페브르에 의하면 권력은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공간을 통제하고, 파편화하며 동질성을 추구한다고 한다.4 공간은 그 공간에 개입하고 관리, 모니터링하고 통제하면서 매우 다양한 활동과 이유, 동질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다양한 건축적 요소와 재료가 사용된다. 그러나 이러한 동질적인 공간은 아파트 단지, 빌라촌, 주택단지 등 주변과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 도심 등으로 조각이 나버린다. 동질성이라는 이름하에 실제 벌어지는 주민들과 보이지 않는 관계와 갈등도 쉽게 은폐된다.

절반의 재개발로 조각난 장위동 전통시장 주변에서 주민들은 여전히 수다 떨고 장을 본다. 도시계획자, 관료 등의 “전문가”에 의해 단기간에 계획된 신도시와는 분명 다른 에너지다. 이 에너지는 또한 시간을 통해 계속 흐르고 있다. 장위동 전통시장에서 만난 한 주민에 의하면 사람들은 개발을 원치 않지만, 일부 세입자들은 강제 철거당했다고 한다. 정부가 밀어붙였다고 한다. 한 상인은 보상금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틸 것이라고 한다. 재개발 해제지역이었던 장위동 12, 15구역은 재개발을 재추진하려는 주민 발대식을 위한 현수막이 걸려있다. 토지를 소유한 75%의 주민들은 재개발을 원한다고 한다. 철거를 앞둔 장위동 10구역은 가림막이 처져 있고, 이전 거주자들이 퇴거한 텅 빈 집들로 가득하다. 더는 쓸모가 없어서 버리고 간 물건들, 이전 거주자인 무당이 살았던 암자 간판, 부적, 이불 등의 인공유물은 개인의 역사와 관련된 숭배의 형식, 접힌 시간의 흔적과 함께 그대로 남아 있다.

주택가 틈새 공간에는 마치 ‘없는 듯’ 자신의 자리(place)를 지정받고 있는 기이한 조형물들이 있다. 자동차 진입을 막기 위해 설치된 이 안전 말뚝(safety bollard)은 자동차로부터 각자의 집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쓰다 남은 시멘트를 부어 그대로 노출해 만든 거친 콘크리트(béton brut ), 페인트 바께스, 적벽돌, 어딘가에서 옮겨온 돌, 바윗돌 등으로 손에 닿는 대로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사물들은 가공하지 않은 콘크리트, 벽돌, 타일과 같은 재료를 있는 그대로 사용하면서 르코르뷔지에가 발전시킨 브루탈리스트 건축과 표면(surface)과 잔해 (debris)를 연상시킨다.

전통적으로 바위는 한국인들에게 숭배의 대상이었다. 지역별 성(性) 숭배 문화에서 선돌이나 선바위는 다산이나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적인 믿음의 대상물이었고, 특수한 목적(무덤, 표지)을 가지고 세워졌다.5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수직으로 서 있는 형태의 커다란 돌은 기념비로 세워지거나 숭배의 대상이었다. 일반적으로 높이가 1 ~ 2m 높이로 서 있으며 거의 조각되지 않았고 자연스러웠다. 대부분은 마을 입구나 열린 들판 한가운데에 세워졌다. 따라서 이러한 조형물을 만드는 행위는 바위의 주술적인 힘을 믿으며

마을마다 탑이나 조형물을 이용해 좋지 않은 기운을 막은 행위와도 닮아있다. 인간에 의해 세워진 이 사물은 때로는 남근을 상징하기도 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공간에 팻말을 세우고 표시를 하며 상징적인 동시에 실천적인 흔적을 남긴다.6 일상에서 마주치면서도 무심코 지나졌던 이 볼라드는 ‘마을의 수호신’을 연상시키고, 분명 거주지를 보살피는 역할을 한다.

나무에 달려있던 감들은 장맛비로 인해 떨어져 뒹굴고 있다. 감이 떨어지는 소리는 공사장 소음보다 더 크게 울린다. 감들이 떨어질 때마다 깜짝 놀라 주변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이제 모든 감나무가 베어질 것이다. 자연적인 공간은 우리들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자연은 더 해체되길 기다리고 있다.

<모두의 집> 프로젝트에서는 <쿨데삭빌> 프로젝트의 연장 선상에서 장위동에 집중한 인덱스 영상을 소개한다. 이 비디오는 수명이 다해가는 장위동 일대에서 작가가 본 포렌식 이미지들로 구성되었다. 이 영상은 전쟁 이후 재건, 부흥, 국민의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건설된 부흥주택의 흔적, 70년대 공공주택 공급기관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영단 주택의 흔적에 찾는 데서 출발했다. 영상에서 보이는 일부 이미지들은 전시장에서도 소개된다. 집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지역 특유의 버내큘러, DIY- 스타일 인덱스 사진 # 4 안전 볼라드 시리즈와 작가가 직접 공간에 개입한 제작 과정의 사진과 (거울 작업, 2020) 다양한 이미지로 구성된 콜라주(인덱스#14)를 소개한다.

두 번째 영상 <가외가전(街外街傳)>은 번호가 부여되지 않은 이미지와 함께 시인 이상의 시 구절들을 보여준다. 이상은 1930년대 식민지 도시화 정책으로 배제된 ‘거리’의 여러 공간을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작가는 ‘거리’ 밖의 ‘거리’ 의 문제를 다루는 ‘가외가전’(길 밖의 길)이라는 시 제목을 그대로 영상의 제목으로 인용했다. 이상은 당시 ‘질병’의 거리에서 식민권력의 통치 테크날러지와 공간 정치 아래 인간의 몸이 어떻게 병적 상태가 되는가에 대해 묘사한다. 실재와 인공적인 모습을 구별할 수 있는 리얼리스트 적인 태도로 도시를 관찰한다.7 예를 들어 “썩는 것들이 낙차(落差) 나며 골목으로 몰린다.”, “싱싱한 육교”, “그 방대(尨大)한 방(房)을 쓸어 생긴 답답한 쓰레기다” 등의 시 구절들은 질병이라는 용어로 식민주의 도시를 묘사한다. 이 시구절들은 현재의 시간과 이 지역에 질문하는 작가의 시선과도 관련이 있다. 이안 존의 두 영상의 사운드는 주제별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새소리가 들리는 비 오는 날, 재개발 현장에서 녹음한 사운드를 바탕으로 오래된 한옥에서 녹음한 카세트테이프 음향, 종, 청동 그릇, 꽹과리, 장구 등의 다양한 타악기와 하모니카를 연주한 음향이다.

이전 전시에서 작가는 ‘촉각적 상상력’ 글쓰기 워크숍에서 초현실주의자들이 사용한 글쓰기 기법인 자동기술법을 응용했다. 참여자에게 눈을 가린 채 한 오브제를 직접 만져보고 느낀 경험을 글로 종이에 묘사해달라고 요청한다. 이 오브제는 지역에서 작가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만지기를 통해 물질을 드러내고, 만지고 쓰다듬는 촉각을 통해 사물에 대한 정보는 불연속적인 문장으로 직접 번역되었다. 자르고 이어져서 한 편의 시가 되는 이 문장들은 잃어버린 집들이 우리의 내부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집은 우리의 몽상을 보호해준다, 몽상하는 이를 보호하고 우리를 평화롭게 꿈꾸게 한다. 집, 방, 창, 지붕 등 일상생활에서 체험하는 주거 공간에 대해 고찰한 바슐라르는 우리는 역사가가 아니고 모두 “언제나 약간 시인들”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모두 상상하기를 다시 시작하라”라고 제안한다.8 집은 우리의 몽상을 보호해준다, 몽상하는 이를 보호하고 우리를 평화롭게 꿈꾸게 한다.

집은 꿈을 꾸기 위한 둥지이고 상상을 하기 위한 은신처이다. 집은 친근감과 동시에 우주와 같이 방대하다. 저장소인 집은 상상의 은유를 위한 포탈(portal)이다. 집에서 우리가 상상하는 것은 연속된다. 집은 단순히 거주를 위한 (물질도 아니고) 도구도 아니다. 우리는 집안에 체류하는 은둔자이고, 스스로와도 만나고 동시에 타자와 만나고 더 나아가 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끊임없는 재건축, 재개발로 거주 공간의 위기에 놓인 오늘날의 도시 서울에서 집은 획일화된 거주를 위한 ‘기계”의 기능만 가지고 있다. 세상의 구석이었던 내 집, 나의 첫 우주, 모든 의미에서 진정한 우주였던, 과거의 집에서 우리는 더는 살 수 없다. 조각난 과거는 꿈을 통해 다시 새집에서 되살아지고, 우리가 잃어버린 집(공간)들도 우리들의 무의식과 함께 집에서 거주한다.

글: 이주영

1 이주영의 ‘인덱스’ 이미지와 클레가의 ‘벽’ 이미지로 구성된 공동작업 영상 <포렌식 시선> 참조.

https://culdesacville.home.blog/2019/06/28/forensic-gaze/

2 이주영과 클레가의 쿨데삭빌 프로젝트 텍스트

https://culdesacville.home.blog/2019/07/24/쿨데삭빌-프로젝트/

3 「장위로 가는 길」, 중앙일보, 1966년 3월 8일자 https://news.joins.com/article/1027409

4앙리 르페브르, 「공간의 생산」, 옮김이 양영란, 에코리브르, p.31

5지역별 성 숭배 문화-문화컨텐츠닷컴, 접속일자 2020. 8. 15 http://www.culturecontent.com

6 앙리 르페브르, 「공간의 생산」, 옮긴이 양영란, 에코리브르, p.292

7 신형철, 가외가(街外街)와 “인외인(人外人)” – 이상(李箱)의 「가외가전(街外街傳)」(1936)에 나타난 일제 강점기 도시화 정책의 이면, 인문학연구 50권 0호, 2015, p.10

8 가스통 바슐라르, 「공간의 시학」, 옮긴이 곽광수, 민음사 1990, p.116-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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